이른 아침의 방안엔 지옥도가 그려져 있었다.

잔저스는 숙취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일어나 엉망진창인 방안을 둘러보다 마지막에 보게된 어떤 것에 혀를 찼다.

오랜만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싶었다 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의 기우였을 뿐이었다.

 

"어이."

 

잔저스는 왠지 불쾌한 기분이 되어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 곤히 자고있는 스쿠알로를 불러 깨웠다.

그 긴 은발은 이불에도 가려지지 않고 비죽이 모습을 드러내고 짙은 인디고빛의 시트위에 그려지고 있었다.

잔저스의 뿔난 음성에도 깨어날 미동도 없는 스쿠알로가 내심 괘씸했다.

그는 깨어나서 방안꼴을 살펴볼때와 마찬가지로 미간을 좁히고 이불을 걷어냈다.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지옥도를 장식하는 마지막 장식물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잔저스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 쪽에서 반응이 생겼다.

꿈틀거렸다 싶더니 이내 "윽..."하고 나직한 신음을 흘린다.

그 음성은 듣기에도 목이 잔뜩 쉬어있었다.

 

잔저스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것인가 깊게 고민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스쿠알로는 잔저스의 짧은 고민에 도움이 되질 않게 부스럭대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은 잔저스가 어젯밤의 일 중 스쿠알로가 자신의 머리를 무릎으로 쳐 댄것까지 기억해내고 말았다.

그에 잔저스는 무의식적으로 잠에서 깨려하는 스쿠알로의 머리를 세게 후려치고 말았다.

"흐...제발 보스 그만..."


뒤돌아 누워있는 스쿠알로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잔저스는 자신이 잠이 덜 깼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약한 소리에 평소보다 거칠어진 목소리가 귓가로 들어온것이다.

게다가 잘게 떠는 몸이라니.

이것은 두려워하고 있는것인가? 스쿠알로가 나를?

더군다나 보스라니, 고쳐주고 고쳐줘도 늘 잔저스라고 불러 재끼던 녀석이 장난식으로 부른것도 아니고 말이다.

 

잔저스는 뒤돌아 누운 스쿠알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자신의 눈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무슨 속셈이야?"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문스러운 물음이었다.

그 남자다운 얼굴은 여기저기가 부어있었고, 멍이 들었으며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목 부근으로 난 손자국이 벌겋게 피멍이들어 잔저스 그가보기에도 안쓰러운 몰골이었으며, 그의 눈은 당당했던 표정을 생각해 낼 수도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꼴사나웠다.



"어이,스쿠알로. 너는 내가 사창가 태생이라고 무시하고 있었어. 그렇지 않나?"


도수높은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횟수에 따라 말이 많아졌다.

그만큼 잔저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속마음도 드러난다.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술을 한잔 한잔 마시면서도 시끄러운 입을 가만 놔둘새 없던 스쿠알로는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잔저스는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런 잔저스를 보며 뭔가 생각하는 눈치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스쿠알로는 입을 열어 또 뭔가 말을 꺼내려 했다.

그가 입을 떼려 하자 잔저스는 고급 양탄자가 깔린 바닥으로 자신의 술잔을 던졌다.

그것은 마치 술맛이 떨어졌다-라고 말하는듯 해 스쿠알로는 입을 다물었지만 곧 다시 열었다.

"잔저스, 나는.."
그런 스쿠알로의 모양을 보던 잔저스는 원형의 테이블 위로 발을 탕-큰소리가 나도록 내렸다.

고의적으로 말을 끊은것이다. 그것은 방안을 고요에 빠트리게 했다.

두번씩이나 말을 방해받자 스쿠알로도 오기가 생겼는지,

"어이, 잔저스! 내 말을 들어어!" 하고 평소처럼 큰 목소리로 말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듣지 않아. 네놈은 날 무시하고있지."

 

잔저스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기생충을 바라보는 눈초리로 스쿠알로의 전신을 훑었다.

그 시선은 아무리 스쿠알로라 할 지라도 온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선에 아랑곳없이 스쿠알로는 "아니! 전혀 그런생각 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제 술잔을 마저 비우고 잔저스쪽의 테이블로 밀어 황금빛의 럼주를 듬뿍 부었다.

"마시고 자라. 난 그런 얘긴 자신 없어."하고 다시 쇼파에 몸을 기대자 왼손의 의수가 의자의 등받이에 걸렸다.

스쿠알로가 잔저스에게 보낸 술잔은 스쿠알로의 눈을 향해 건네졌다.

그것은 스쿠알로가 피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가 엹은 열상을 만들었다.

스쿠알로가 믿지못할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벽으로 날아간 술잔을 확인하자 움푹 패인 벽과 술잔의 잔해가 보였다.

분노염을 담아 던진것이다.

 그대로 맞았다간 머리가 깨질뻔했다. 그것을 깨닫자 잔뜩 화가 치민다.

"이봐! 뭐하는 짓이야! 맞으면 죽는다!"

이내 고개를 돌린 스쿠알로는 노여운 기색으로 빠르게 잔저스를 돌아보았다.

스쿠알로는 갑자기 술기운이 핑 돌았다. 믿지 못하는 자신의 보스에게, 충정심을 시험당하고 있는가-라고 생각하자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여태까지도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을 배신할것이라고 각인되어 있는걸까?

보스에게 자신을 믿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진행중일 거라고. 스쿠알로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속에서 뜨거운 화와 매스꺼움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지금 이대로 잔저스에게 불평이나 화를 늘어 놓는것도 좋은일이다.

하지만 맨 정신으로 싸워도 그에게는 못당하는 자신인데 술 취한 지금으로써는 무리다.

그는 호기넘치고 다혈질이긴 하지만 의외로 냉철한 상황파악을 잘했다.

지금은 물러나는게 좋다.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투고, 명령을 주고받고 하는 사이지만 가끔은 인정받고 싶을 때도 있다.

스쿠알로는 피가 흐르는 볼을 손으로 대충 훑고있자 잔저스는 눈썹을 꿈틀 하며 그가 하는 양을 본다.

화가 난 것이 영력한데 참고있었다. 입을 다물고 입술을 깨문다.

 

스쿠알로라는 남자가 참는다는 자체는 상당히 드문일이어서 잔저스는 그 모습이 재밌었다.

지금 대들어 준다면 좋은 화풀이가 될 것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잔저스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참고 있는 화산을 폭발시켜서 가지고 놀면 어떨까. 그는 술병을 들고 나가려는 스쿠알로의 얼굴을 다시한번 본다.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에 말한다.

"앉아. 내 발밑에. 무릎꿇고. 그럼 용서해주지."

자신의 기분이 불유쾌하게 된 것을 사과하라는, 잔저스다운 명령이었다.

스쿠알로는 그 권위로운 명령에 경박한 입을 벌린다. 그의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미쳤군'하는 입모양을 만들어낸다.

+
물론, 스쿠알로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를 사람이 아니란건 잔저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반응또한 잔저스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잔저스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대며 물었다.

"왜. 앞으로도 내 명령은 듣지 않을건가?"

잔저스의 고저없는 물음이 스쿠알로에겐 지금 내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앞으로 명령줄 일이 없겠군, 하는것과 같은 의미로 들렸다.

이런건 좋지 않다. 한달 뒤 쯤이면 바리아 아지트 뒷산에 부패된 시신 하나가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스쿠알로다.

스쿠알로는 나가려던 발길을 붙잡아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잔저스의 앞에 섰다.

그는 그 어린날 소녀처럼 머리카락에 대고 염원을 맹세할때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을 오늘날 하게 된 것이다.

스쿠알로가 긴 호흡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가 순순히 무릎까지 꿇자 잘 웃지않는 잔저스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 미소는 스쿠알로에게 비참하기도 하고 굴욕적이기도 했다.

스쿠알로는 그 얼굴을 마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이, 기왕 무릎 꿇은거 머리라도 숙일까? 이참에 절대 배신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충성서약도 하고. 어때?"

표정없는 얼굴로 짓씹듯 내뱉는 스쿠알로의 물음에 잔저스는 비웃는 얼굴을 거두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갸웃하며 스쿠알로의 머리위에 발을 올려 짓눌렀다.

스쿠알로는 그 힘에 자칫 혀를 깨물뻔했지만 가까스로 그런 상황은 피했다.

이 놈의 보스는 기어코 나를 화나게 할 속셈인가?

생각하기 무섭게 스쿠알로의 왼손이 잔저스의 발을 잡아채기 위해 움직였다.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본능은 몸을 빠르게 만들었다.

아니, 생각이 없었다.

그가 손을 놀리고 나서야 문득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스쿠알로의 이성없는 반항을 잔저스는 가볍게 낚아챘다.

"아는데 왜 하질 않는거지? 고개도 숙이고, 내 명령이라면 뭐든 하고, 내가 즐거워할 일만 하면 되지 않나. 비록 그 속에 뭐가 들었든 너는 결국 쓰레기니까."

나직한 목소리가 스쿠알로의 귓가를 울렸다.
이 남자는 언제나 스쿠알로가 8년전에도, 8년동안에도, 그리고 지금도 줄곧 담고있는 충정심을 단 한마디로 짓밟을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그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아 버린 스쿠알로는 의수를 붙잡힌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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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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